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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소울(Soul)

한국심리상담센터
2022-05-14
조회수 16


영화---소울(Soul)




나는 어떻게 ‘나’로 태어나게 되었을까?
지구에 오기 전 영혼들이 머무는 ‘태어나기 전 세상’이 있다면?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게 된 그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탄생 전 영혼들이 멘토와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면 지구 통행증을 발급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 ‘조’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시니컬한 영혼 ‘22’의 멘토가 된다.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멘토 되길 포기한 영혼 ‘22’ 꿈의 무대에 서려면 ‘22’의 지구 통행증이 필요한 ‘조’ 그는 다시 지구로 돌아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영화를 소개하는 기본정보입니다. 다음은 영화를 보고 와서 읽어보세요. 이 영화를 보고는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 이 글을 씁니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단편영화 토끼굴(Burrow)을 상영합니다. 영화의 주제가 불꽃(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나 가치)인데 단편영화도 토끼의 작은 불꽃을 그립니다. 토끼는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설계도를 가지고 굴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이웃인 두더지와 쥐가 등장하고 그들의 집에 비하여 자신의 집은 너무 왜소해서 창피합니다. 급히 도망치듯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지하수의 흐름을 건드려 물이 범람하여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덩치 큰 오소리에게 도움을 청하여 이웃들의 공동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웃들은 토끼의 집을 지상에 멋지게 지어줍니다.

자신만의 불꽃도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는 겁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 사이, 인간(人間)입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도 세간에서 하는 것이지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육조 혜능 대사의 법어처럼 ‘속세를 떠나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토끼 뿔을 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소울에는 저세상을 ‘그레이트 비욘드(Great Beyond)’로 표현하고 이곳의 관리자를 ‘테리’라 하였고, 영혼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을 ‘그레이트 비포(Great Before)’라 하였고 이곳의 관리자를 ‘제리’라 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영혼들이 멘토를 통하여 성격과 관심사를 갖추게 되는 ‘유 세미나(You Seminar)’가 있으며, 멘토들의 전 생애를 보여주는 ‘당신의 전당’이 있고 지구상의 모든 것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의 전당’이 있습니다.

영화 공개 전에는 ‘뉴욕 거리에서 우주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는 작품’이라고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영화는 삶의 가치, 삶의 불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조 가드너는 뉴욕시의 재즈 뮤지션이며, 한 중학교에서 시간제 교사로 밴드를 가르치고 있었고, 그는 안정된 직업을 가질 기회가 있지만, 직업 연주자의 길을 선호합니다. 이때 유명 재즈음악가인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밴드에 피아니스트가 비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오디션에 응하였고 도로테아가 함께 공연하자는 말에 기뻐 날뛰며 돌아오는 도중 맨홀에 빠져 영육(靈肉)이 분리됩니다.

영혼 상태로 깨어난 조는 저승길로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를 거부하고 탈출하려다 자신도 모르게 차원간 공간을 통과하여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유 세미나에서 심리학 박사로 오인된 조는 마더 테레사, 간디 같은 위대한 멘토들도 포기한 22호 소울의 멘토가 됩니다.

멘토링 중 길을 잃은 영혼들을 도와주는 문윈드의 도움으로 지구로 내려가게 되는데 시행착오로 22호 소울이 조의 육체로 들어가고 조는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구에서 만난 문윈드는 길거리에서 패널을 돌리며 가게를 홍보하는 일을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대단할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문윈드는 즐겁게 일합니다. 일상을 즐기는 그의 영혼은 밤에 그레이트 비포에 가서 길을 잃은 영혼들을 돌보고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조의 몸을 통하여 일상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 22호 소울과 조는 테리가 놓은 덫에 걸려 그레이트 비포에 돌아가게 되고 그곳에 가니 22호는 불꽃이 생겨 지구통행권을 얻게 됩니다. 조는 22호 소울이 자기 대신 지구에서 살면서 불꽃이 생긴 것이라며, 이는 진정으로 22호 때문에 만들어진 불꽃이 아니라고 말하는 조의 말에 혼란에 빠진 22호 소울은 지구통행권을 조에게 주고 도망쳐버립니다.

조는 지구에 내려가 뮤지션의 꿈을 이루었지만, 왠지 허전하였습니다. 그동안 꿈을 추구하며 달려왔지만, 막상 꿈을 이루고 나니 허무해진 것입니다. 22호가 조의 몸을 통해 모은 피자 조각, 베이글 조각, 바느질 도구, 단풍나무 씨앗 등을 보며 생각에 빠진 조는 삶에 있어 중요한 건 특정한 목적과 꿈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 자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22호 소울이 지구에 와서 불꽃을 얻게 된 것도 꿈을 찾거나 열정을 얻어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조는 다시 그레이트 비포로 돌아가 22호 소울을 만나려고 하는데, 22호 소울은 방황하다가 ‘길 잃은 영혼’이 되어 버렸고, 조는 문윈드와 함께 22호 소울을 찾아 단풍나무 씨앗을 22호에게 전달하고 통행증의 마지막 칸은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면 자동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가르쳐주어 22를 구원하게 됩니다. 이후 조는 22호에게 지구통행증을 건내주고 22호는 조가 지구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만, 조는 22호를 차분한 미소로 안심시키며 22호에게 기회를 넘겨줍니다. 22호는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망설이지만 조는 손을 잡아주며 22호와 함께 지구로 뛰어내리고 미소를 지으며 22호와 이별합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조는 처음에 왔던 그레이트 비욘드의 입구로 돌아가지만, 아무도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속성을 갖추게 하지 못했던 22호를 각성시킨 것을 본 제리는 감명을 받아 소울카운터 테리를 속여 주판수 하나를 줄여버리고 조에게 특별히 다시 한번 현세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줍니다. 조는 이를 받아들이고, 이렇게 말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나는 매 순간을 살 거야.

이 영화를 통하여 떠오르는 몇 가지 단상은 이렇습니다.

1. 영혼은 죽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삽니다. 이런 불사의식이 영혼의 느낌입니다. 영육의 합일을 생(生)이라 하고 영육의 분리를 사(死)라 합니다.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죽고 사는 것은 하나입니다. 생사일여(生死一如)입니다. 본질은 영원하고 현상은 일시적입니다. 그러니 영혼은 영혼하고 육체는 일시적입니다. 영혼의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러니 영혼으로 사는 것이 맞습니다. 육체는 영혼이 잠시 왔다 가는 집입니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입니다. 피자의 맛을 느끼고 빵의 맛을 느끼며, 떨어지는 단풍나무의 씨앗의 촉감을 느끼고, 따뜻한 햇빛을 느끼는 것, 느낌을 느끼며 사는 것이 영혼으로 사는 길입니다. 느낌을 느끼세요!

2. 삶은 영혼의 물질체험이다

지구는 영혼들의 학습을 위한 물질 체험장입니다. 영혼은 영화에서와 같이 피자맛도 못 보고 뺨을 때려도 감각이 없습니다. 지구는 3차원 물질 세상에서 4차원으로 상승하였고, 영계는 5차원입니다. 현재 지구는 예전보다 훨씬 생각대로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으로 한 것도 한 것입니다. 생각으로도 남에게 척(慼)을 지으면 안 됩니다. 생각으로 남을 잘 되게 하면 그도 덕이 되어 나에게 돌아옵니다. 생각에서 생각이 나오니 생각을 항상 밝고 맑고 긍정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영어로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같은 어원입니다. 그러니 늘 감사할 것을 생각하세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4차원 물질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게 할 열쇠입니다. 늘 사랑과 감사, 기쁨 속에 머무세요! 감사를 마시고 사랑을 내쉬세요. 호흡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깊이 호흡하세요. 숨을 내쉬면서 ‘사랑합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감사합니다!’ 숨을 지긋이 멈추면서 ‘기쁩니다!’ 호흡을 길고 천천히 반복하세요. 이것을 ‘감사호흡법’이라 합니다. 하루 중 생각날 때마다 반복하세요.

3. 육체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

보이는 세상은 언제나 보이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 그 이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고 하니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 존립의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보이지 않지만, 그 나무가 튼튼히 서고 자라는 근원입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영계의 산물입니다. 영계에서 사라지면 인계에서 태어나고 인계에서 죽으면 영계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래 온 곳으로 돌아갔다는 뜻이죠. 영화에서 뉴욕에서 우주로, 저세상으로 무대가 확장되듯이 인간 의식의 지평을 확대하여 내세와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영역에까지 통찰하는 통합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풍부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계는 영혼들의 연극무대입니다. 이 삶이 영혼의 연극이고 게임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연극을 하면서 진짜로 칼로 상대방을 찌르는 배우는 없을 것입니다. 삶에서 진실하되 너무 심각해지지는 마세요. 이것이 게임임을 기억하고 상대방과 플레이를 잘하세요. 서로를 존중심으로 대하고 모든 기회를 통하여 남을 잘 되게 하세요. 이것이 상생게임의 게임룰입니다.

4. 영혼이 인세에 올 때는 많은 준비를 거친다

영화에서 22호 소울은 수천 년간 수많은 위대한 멘토들의 지도를 받으며 그레이트 비포에서 지구의 삶을 준비합니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이 보낼 수 있겠습니까. “삼일수심(三日修心) 천재보(千載寶), 백년탐물(百年貪物) 일조진(一朝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 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가 되고, 백 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유가에서는 ‘운명’이라 하고, 불가에서는 ‘전생 숙업’이라 하며, 천주교에서는 ‘천주 섭리’라 하지만, 실로 닦을 수(修) 자 하나에 인생의 명운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5. 영혼은 다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22호가 조의 뺨을 좌우로 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불가에서 선지식이 제자의 머리를 주장자로 내리치는 장면과 오버랩 됩니다. 불가에서는 심즉불(心卽佛)이라 하였습니다. 적어도 너의 몸이 너는 아니고 네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너다 라는 깨우침입니다. 그러나 마음도 내가 아닙니다. 입고 있는 옷을 자신이라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옷은 몸이 입고 있는 옷입니다. 몸은 영혼이 입고 있는 옷입니다. 혼(魂)은 영(靈)이 입고 있는 옷입니다. 영(靈)이 나입니다. I am spirit. 영(靈)은 불생불멸의 자리입니다. 영이 나의 진아(眞我)입니다. 영은 오직 사랑하고, 영은 오직 감사하며, 영은 오직 기뻐하고, 영은 오직 받아들이며, 영은 오직 축복합니다. 그러니 영으로 듣고 말하고 행하세요. 언제나 사랑과 감사, 기쁨 속에 머무세요!

6. 지금 여기가 바다다

영화에서 멋지게 연주를 마치고 나온 조가 허전해 하자, 도로테아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다로 가고 싶은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물었다. 바다로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되나요? 지금 여기가 바다란다. 여기가 바다라고요? 여긴 그냥 물인데...” 물고기가 물 속에 살면서 물이 무엇인지 모르듯이 인간이 도(道) 속에 살면서 도(道)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업은 아기 3년 찾는다’는 말이 있듯이 도를 이고 있고 안고 있고 업고 있으면서 인간은 도를 찾아 헤맵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시계추처럼 과거와 미래를 오락가락하며 지금 여기에 머물지 못합니다. 지금 여기가 도(道)입니다. 지금 여기가 영(靈)입니다. 지금 여기가 진아(眞我)의 자리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인간 수업의 종착역에 다다른 것입니다. 지금 여기, 현재, 매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삶의 선물입니다.

7. 영혼의 불꽃은 사랑이다

신(神)이 사랑이고 사랑이 신입니다.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편재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랑이니, 인간 영혼의 정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무생물에서 결합력이고, 꽃에서는 에센스이며, 동물에게는 자연적인 본성이고, 인간에게는 애정으로 표현됩니다. 신의 무소부재함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오직 사랑을 가르치고,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선택입니다. 사랑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서 신성(神性)을 보고자 하는 의식적인 선택입니다. 내 영혼의 불꽃은 사랑이니, 모든 순간에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세요. “지금 사랑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사랑이 없고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의식을 전환하여 사랑의 존재상태를 유지할 마법의 질문입니다.

8. 22, 이원성의 세상

영혼22는 이원성, 모순의 세상에 사는 영혼들을 상징합니다. 수비학에서 1은 통합수, 2는 분열 대립의 수, 3수는 활성화의 수입니다. 두 부부가 싸우다가도 자녀가 생겨 3수리가 되면 가정이 화목하게 됩니다. 항상 2수리보다는 3수리를 보세요.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으로 일을 도모하세요. 속담에 “삼인회석(三人會席)에 관장(官長)의 공사를 처결한다.”는 말이 있고, 중국 속담에 “구두 수선공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 하였습니다. 세 사람의 지혜가 모이면 고을 원의 공적 사무를 처결할 수 있다는 말이고, 대중의 지혜는 언제나 위정자보다 높은 것입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이해와 사랑’을 개입시켜 2수를 3수로 만들어 세상을 화평하게 하세요. 그 일하려고 지금 여기에 당신이 있습니다.

9. 관찰자의 삶

자동차를 타고 운전하는 것은 나입니다. 자동차를 보고 ‘나’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옷을 보고 나라고 하는 사람도 없죠. 그런데 육체는 나인가요? 아직도 육체를 나라도 생각하는 분이 남이 있나요. 지구상에. 육체는 내가 아니죠. 마음도 내가 아닌데요. 생각, 감정, 오감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구구인가요? 마음 안에 내재하는 영(spirit)이 나입니다. 나인 영으로 생각, 감정, 오감을 관찰해보세요. 그런 시간을 자주 가지세요. 세상과 낮은 담장을 치고 그 뒤로 가세요. 높은 담장을 치면 밖이 안 보여 궁금해지니 낮은 담장을 치세요. 세상의 쟁투에 참전하지 마세요. 이제 질리지도 않나요? 공격을 아예 포기하세요. 자신에 대한 남에 대한 공격을 말이죠. 거짓과 공격은 에고(ego)의 전매특허입니다. 에고는 길들일 대상이 아니며, 타협의 대상도 아닙니다. 에고를 버리세요.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세요. 양심(良心)으로 살아가세요. 하늘로부터 받은 천성(天性)인 양심을 회복하기에 전념하세요. 지금은 그럴 때입니다. 빛과 사랑의 시대에 걸맞는 자신을 준비하세요.

10. 일상의 즐거움

영어로 감사(Thank)의 어원은 생각(Think)입니다. 무언가 감사하려면 생각을 좀 해봐야 합니다. 원래 감사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죠. 그런데 이것은 저절로 느껴질 정도의 비정상적인 혜택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고 보통의 상태에서는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려면 교양이 필요합니다. 아기가 태어나 진자리를 마른자리로 갈아주고 배고파 울 때 젖을 주어 3년간은 옆에서 꼼짝 못 하고 키워 놓아도 아이가 배움이 없으면 부모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서 인간의 도리에 대한 수업을 쌓으면 비로소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국가사회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은혜를 알고 보은하려는 행위를 하면 “이제 철이 들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도리 중 첫 번째는 하느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복록 수명은 부모가 주신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하느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철부지(哲不知) 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일상의 즐거움은 범사에 감사하는 데 있습니다. 감사할 거리를 생각해보면 하루에도 10개, 100개, 1,000개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일일이 은혜를 실제로 갚기도 하고, 감사를 표명하다 보면 사는 즐거움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감사의 자리에서 하늘을 보면 쏟아지는 햇빛에 감사하게 되고, 떨어지는 단풍나무 열매에 감사하게 되며, 한 조각의 피자에 감사하게 됩니다.

11. 길을 잃은 영혼

진리는 위협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아닌 것은 허상입니다.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방에 들어갈 때 스위치를 켜서 불을 밝히면 어둠이 어디 창문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밝아집니다. 깨달음은 내면의 밝아짐입니다. 자신이 신성(神性)이라는 각성입니다. 우주는 신(神)의 일속입니다. 분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리는 환상입니다. 불을 켜면 밝아지는 어둠과 같이. 세상에서 자신은 혼자라는 분리의 느낌 속에서 마음은 재리(財利)나 명리(名利)에 사로잡혀 신성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영혼은 길을 잃은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영혼은 길을 잃은 것입니다. 도(道)를 찾고, 도리(道理)를 행하여야 합니다. 길은 오직 한 길, 하느님의 길, 신도(神道)뿐입니다.

12. 문윈드의 영적 봉사

새 시대(New Age)의 생활법은 이렇습니다. 단순하고 우아하게 사는 것입니다. 악전고투하는 삶이 아닙니다. 단순하고 우아한 삶은 허용하는 깊이에 달려있습니다. 사랑은 허용의 예술입니다. 허용하는 삶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람쥐는 나무를 우아하게 타고, 오리는 강물을 우아하게 헤엄칩니다. 문제는 오리가 나무를 타고 다람쥐가 강물을 건너야 할 때 발생합니다. 나무를 잘 타지 못하는 갈퀴가 찢어진 오리를 나무라고 순식간에 강물을 건너지 못하는 다람쥐를 나무랄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모든 미친 짓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각자는 가슴이 노래부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각자의 달란트대로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슴 안에 나의 진정한 자아인 영(spirit)이 있으니 모두는 가슴의 안내를 받으며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영적 봉사의 길입니다. 지금 시기 이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13. 마지막 대사

“매 순간 순간을 살 거야(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영화 소울의 마지막 대사입니다. 23년 걸려 만든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의 마직막 결정체입니다. 한 편의 영화는 당시의 대중의식을 반영합니다. 웹스터(Webster) 사전에 시간이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져 가는 사건들의 기간 안에서 측정되는 비공간적 연속체’라고 하였습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있을 뿐입니다. 과거는 지난 것이고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니 나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그래서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입니다. 매 순간을 선물로 받아들이며 사랑과 감사, 기쁨 속에 살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적인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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