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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적 개념을 정신분석적 듣기에 적용

게시판관리자
2023-04-19
조회수 792



정신분석적 듣기의 중요성

듣기는 정신과 의사가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환자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의 사례에 대한 이해를 시도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듣기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정신과 전공의에게 널리 알려진 정신분석 관련 교과서에서는 정신치료 중 듣기에 관련해서는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 않으며,

 Psychoanalytic Electronic Publishing (PEP) web에서 ‘분석적 듣기(analytic listening)’ 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 이후로 검색하면 총 39편의 논문만이검색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정신분석적 듣기가 일상생활의 듣기와 다른 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연구해 보았다.


정신의학 임상 영역에서 환자의 병리를 이해하는 데 무의식적인 정신병리 기제가

 포함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정신분석적 듣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병리기전을 파악하고 질병의 원인을 추적해 치료하는 연역적인 추론 방식에 

익숙한 의사들은 해석학적 방법에 더 가까운 ‘정신분석적 듣기’에 관심이부족하다. 

여기서 해석학적 방법이란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서가 아니라 두 주체가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Lee 2022). 


그리고 뇌과학과 정신의학이 발달하면서 현대 정신분석학과 같은 해석학적 방법으로 환자를 

이해하기보다는 연역적인 방법으로 환자를 이해하기를 더 선호하는 기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신과 환자의 증상은 주관적이며 고유한 무의식적 충동과 관련되어

 있어서 ‘정신분석적 듣기’를 배제하고는 환자의 무의식적 정신병리를 이해할 수 없어 공감적 치료환경을 조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신분석가가 되고자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정신과 전공의 또한 임상진료를 할 때 

더 수준 높은 의료행위를 행하기 위해서 정신분석적 듣기에 대한 수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로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지도감독을 받으며

 정신치료 중 듣기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지도감독을 통해 경험한 정신분석적 듣기 그리고 정신분석적 듣기를 탐구하면서

 환자의 정신병리를 이해하고 병리적 현상을 치료하는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임상사례를 들어 소개하고자 한다. 

나아가 현대물리학인 양자역학적 개념을 통해 정신분석을 새로이 이해하고,

이러한 양자역학적 개념을 정신분석적 듣기에 적용하고자 한다.


양자역학으로 바라본 정신분석과 정신분석적 듣기

정신분석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며,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서 프로이트가 선택한 출발점은 무의식이었다. 또다른 정신분석의 중요한 가설로는 정신결정론이 있으며, 이는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 그리고 감정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동기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Gabbard 2014). 다시 말하면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이며, 이미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 그 동기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이 만들어질 당시 과학계에서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여진 뉴턴 역학적인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Epstein 1987; Morstyn 1989). 뉴턴역학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명확하게 구별 지어지고, 관찰자인 실험자는 어떤 특정 값으로 치우쳐지지 않게 중립을 지키는 실험 환경에서 원인과 결과를 찾기 위한 실험을 계획한다. 하지만 정신분석 실제에서는, 분석상황의 분석가의 자아가 관찰하는 자아이기도 하지만 경험하는 자아가 있어서(Sterba 1934) 명확하게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분석의 기본적 가설인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의식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진공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로 뉴턴고전역학에서는 아무 물질도 없다는 것을 뜻했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진공은 에너지가 0인 상태가 아니며 물질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Beiser 2002). 양자역학에서 진공의 에너지가 0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듯이, 의식이 도사리지 않는 진공의 공간 같은 무의식에서도 정신적 에너지가 작동하고 있고, 원자아와 초자아와 같은 상반되는 힘들이 왔다 갔다 반복하고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신치료 중 정신치료자가 침묵을 듣는 것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졌는데, 우리는 이미 침묵이 오히려 발화하는 순간보다 더 큰 무의식적 의미를 담을 수도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다(Akhtar 2013).

양자역학은 원자, 전자 등의 미시적 대상에 적용되는 물리학이다. 그리고 기존의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연 현상에 ‘관찰자’를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주 작은 미시 세계의 대상들은 관찰자의 여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예를 들어 전자는 관측하지 않을 때는 물결과 같은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측하기 시작하면 야구공과 같은 ‘입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 말은 우리가 관찰하지 않을 때는 양자가 파동의 형태로 눈에 보이지 않다가어떤 의도를 가지고 바라볼 때 입자의 성질을 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전역학적 관점으로는 받아들일수 없는 것으로, 상식과 너무나 다르고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기 위한 해석이 따로 필요하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양자는 여러 상태가 확률적으로 겹쳐 있는 파동함수로 존재하고 있다가, 관찰자가 측정을 시작하면 파동함수의 붕괴가 일어나면서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 이는 고전역학에서 입자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는 것과 명백히 상반된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가 어느 순간, 어느 곳에 있는지 단지 확률로만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입자들의 최종 위치는 결정적이지 않으며 절대적인 우연을 따른다. 이렇게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는 것을 ‘불확정성 원리’라고 하며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그리고 측정하기 전까지 확률적으로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을 양자중첩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자의 확률을 파동함수로 표현하며, 파동함수의 크기는 입자에게 허용된 에너지 양자를 고려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항상 0보다 커야 한다. 양자역학자들은 이와 같은 양자 현상을 증명하여 몇 백년간 과학을 지탱했던 고전뉴턴역학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무너뜨렸다.

양자의 자연현상은 우리의 상식과 너무 달라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양자역학의 예측은 놀랍게도 정확하게 들어 맞아 현대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응용되고 있다.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결과물로는 레이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반도체 그리고 자기공명영상장치(MRI)가 있다(Li 2018). 또한 생물학이나 화학 등에서 양자역학의 개념을 접목해 양자생물학, 양자화학 등으로 연구되고 있다. 더 나아가 양자역학의 주요 개념은 현대의 정신과의사들과 정신분석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설리반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영향을 받아 ‘참여하며 관찰(participant observation)’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Sullivan 1953). Morstyn은 기존의 뉴턴역학적 관점으로 정신분석을 바라보면 경계선환자의 정신치료 과정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 양자역학적인 관점으로 정신분석을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Morstyn 1989). Gargiulo는 분석가와 환자의 상호작용을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으로 설명하였다(Gargiulo 2016).

양자얽힘은 양자역학적으로 존재하는 상관관계로, 둘 사이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양자 법칙에 의해 양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호작용을 뜻한다. 양자 얽힘은 우주를 구성하는 것들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Rosenblum과 Kuttner 2011). Gargiulo는 양자얽힘 개념에 빗대어, ‘나(I)’가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지 않고 맥락 속에서 존재함을 강조하였다(Gargiulo 2016). 국소적 실체를 믿었던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양자얽힘 현상을 ‘말도 안 되는 유령 같은 원격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 칭하며 부정하였다(Rosenblum과 Kuttner 2011). 하지만 현대 물리학자들은 두 개의 양자 사이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무의식이 여태껏 자연과학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의식적 사건들이 관찰될 수 없다는 기본 전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양자역학에서는 고전역학에서 배제되었던 관찰자를 끌어들여 여태껏 관찰될 수 없었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고전역학에서 실험을 고안한 관찰자의 의도를 배제하였듯이, 전통적인 정신분석에서는 분석가가 자신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중립을 지키는 관찰자로서 존재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후, 분석가의 절제와 중립성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인식되기 시작하며, 상호주관성이 강조되기 시작되었다(Choi 2008). 관찰자의 의도를 포함시키면서 물리학자들이 기존의 결정론적 관점에서 비결정론적인 양자역학적 관점을 가지게 된 것처럼, 현대정신분석은 분석가의 주관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발전해 왔다. Gargiulo는 이러한 유사점들을 발견하고 양자역학적 개념으로 정신분석을 새로이 이해하여 ‘양자 정신분석(quantum psychoanalysis)’이라이름 붙였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양자역학적 개념을 도입해 무의식을 새롭게 이해했듯이, 과학자들 또한 양자역학적 수식으로 무의식을 표현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Tomic (2020)은 마테-블랑코의 복논리 개념(Bi-logic concept)을 양자 논리(quantum logic)를 이용해 수식으로 표현하였고, Iurato (2018)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컴퓨터과학에 접목하여 계산정신분석학(computational psychoanalysis)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양자역학과 정신분석학 사이에 여러 공통점이 존재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를 통합하여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분야 모두에 정통한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우며, 학문간 건설적인 교류가 적어 이론으로 그칠 뿐 임상에 적용되는 예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는 양자역학적 개념으로 정신분석을 다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임상실제에 적용하는 방법을 탐구하였다. 환자가 정신분석 과정 중 ‘자유연상’을 통해 일상적 말하기와 다른 말하기를 하는 것처럼, 정신분석가 또한 들을 때 일상적 듣기와 다르게 분석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환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 가치관 등을 투과시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임상가가 들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을 더 잘 듣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말은 잠재적으로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환자가 한 말의 의미는 항상 듣고 있는 임상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저자는 양자역학적 개념을 적용하여 분석적 듣기를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이논문에서 표현하는 ‘듣기’란 ‘정신분석적 듣기’를 말하며 정신분석 또는 정신치료 과정 중에서 정신치료자의 듣기를 말한다. 정신분석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피분석자의 무의식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환자가 표현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는 임상가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숨겨져 있어서 정신분석적 듣기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여태껏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듣기에 대해 말했으며,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은 프로이트와 비온이다. 프로이트는 “위에서 골고루 살피는 주의력(evenly hovering attention, Gleichschwebende Aufmerksamkeit)”을 제시하였고, 치료자는 환자가 말한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전달되지 않는 비언어적인 표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였다(Freud 1912). 그리고 비온은 가장 순수한 듣기는 “기억이나 열망을 가지지 않고 듣기(listen without memory nor desire)”라고 하였는데, 정신분석적 관찰(psychoanalytic observation)은 어떤 일이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일과 관련된 것이어서 과거의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 기대되는 것을 배제하고 들어야 한다고 하였다(Bion 1967).

양자역학에서는 단지 측정된 결과들을 토대로 유추해서 해석할 뿐, 양자 파동은 그 자체로 관측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Omn`es 1999). 이는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적 의미가 중층 결정되어 있고, 분석상황에서 말실수나 꿈, 그리고 전이와 같은 것으로 무의식적 의미를 유추할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무의식을 양자 파동에 빗대어, 의식은 양자 파동의 확률 중 한 가지라 볼 수 있다(Gargiulo 2016). 그리고 ‘양자 듣기’는 수많은 가능성 중 단 한 가지를 현실로 경험하여 듣는 것인데, 분석가의 관찰하는 자아(observing ego)는 ‘양자 듣기’ 과정에 영향을 끼쳐 확률 분포 중 한 가지를 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양자 듣기’는 분석가 자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무의식적 의미를 유추했는지를 살펴보아서, 무의식의 또 다른 의미를 의식 수준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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