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여름,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명단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특히 가해자 중 상당수는 피해자와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같은 동네에 사는 '아는 사람'이었다. 언론은 이 소식을 연일 보도했지만, 정작 우리가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왜 가해자들은 굳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걸까? 또, 친밀함은 어떻게 폭력의 조건이 되는 걸까? 이 사설에서는 그 심리적 구조를 차근차근 짚어보려 한다.
'아는 사이'가 범죄의 조건이 되다
디지털 성범죄에서 지인에 의한 피해가 두드러진다는 점은 통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5년에 발표된 딥페이크 성범죄 판결문 분석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의 98.7%가 여성이고, 가해자들이 표적으로 삼은 사람 중 40.25%가 지인이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SNS 프로필 사진이나 카카오톡 이미지처럼 평소에 쉽게 볼 수 있는 사진을 모아 합성물을 만드는 데 썼다. 이렇게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합성물이 훨씬 실제처럼 보인다는 두 가지 범행 조건이 자연스럽게 갖춰진다.
심리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구조는 더 복잡해진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직접 아니까,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가 가능하다. 반대로 피해자 입장에서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피해 사실이 평소 생활반경까지 침투하게 된다. 만약 낯선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면 적어도 일상 공간만큼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인에 의한 피해는 학교, 직장, 동네 등 평범한 공간마저 불안의 영역으로 만든다. 피해자는 내일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 이미 자신을 그런 방식으로 소비했다는 사실을 안 채로, 일상을 버텨야 한다.
집단역학과 탈억제 — 온라인 공간이 가해를 부추기는 방식
개인이 혼자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집단 안에서 금세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실제로 여러 심리학 연구를 보면, 이런 조직적인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온라인 특성 때문에 성착취물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피해자를 향한 공감 능력도 점점 사라진다. 여기에 집단의 규범을 내면화하고 윤리의식이 부족한 상황이 겹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쉽게 정당화하고 책임감도 느끼지 않게 된다. 인터넷의 익명성 역시 이런 책임감을 흐리게 만들고, 가해자가 자신을 단순한 '대리인' 정도로 여기도록 만든다.
이런 집단 안에서는 지인의 이미지를 올리는 행동이 일종의 '기여'처럼 받아들여진다. 또 누군가의 동창이거나, 이웃이나 직장 동료의 사진을 합성하거나 공유하는 일이 집단 내부 결속을 다지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친근한 인물일수록 그 콘텐츠는 더 구체적이 되고, 집단 안에서는 이런 자료가 더 가치 있게 여겨진다. 결국, 친밀함이라는 요소가 착취의 수단으로 바뀌는 순간인 셈이다.
데이트 관계 — 신뢰가 통제의 언어로 바뀔 때
지인에게서 발생하는 또 다른 피해 유형은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데이트 관계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성폭력을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이런 피해는 개인적인 권력이 사회적인 권력으로 옮겨가며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으로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처음에 '강제적으로 허용하는' 단계를 겪게 된다. 연인이라는 이름 아래 쌓은 신뢰와 친밀함이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고, 가해자는 이 틈을 이용해 성적인 사진을 요구하거나 동의 없는 촬영을 시도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피해자가 초반에는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연인이라는 관계가 폭력의 실체를 감추기 때문이다. 뒤늦게 피해를 인식하고 맞서려고 해도, 가해자는 관계 자체를 무기로 삼아 협박하거나 상대를 고립시킨다. 신뢰는 어느새 통제의 도구가 되고, 친밀감은 오히려 피해자를 더 깊은 취약함 속으로 내몬다.
피해는 유포와 함께 무한히 확장된다
디지털 성범죄가 오프라인 성폭력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바로 피해가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딥페이크 성적 허위 영상물 심의가 요청된 건수는 9,006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제로 삭제 조치가 이뤄진 경우는 4.5%에 불과했다. 한 번 인터넷에 퍼진 합성물은 사실상 영구적으로 남게 되며, 피해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의 심리 지원 현황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피해가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기는 사회적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연구는 법과 정책의 개선 못지않게 피해자 중심의 심리 치료와 회복 프로그램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만약 피해자가 '아는 사람'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면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삭제를 요청할 공식적인 창구를 찾으려는 과정에서조차, 가해자가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이 피해자를 한층 더 외롭게 만든다.
우리 대학가가 응시해야 할 것
이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를 연구해보면, 예전에는 주로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던 범죄가 이제는 주변 지인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특히 가해자 중 상당수가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이라는 점도 확인됐다. 같은 학과, 같은 동아리, 같은 기숙사처럼 우리가 매일 드나드는 일상 공간이 언제든 범죄의 무대가 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해자들이 멀리 있는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어제까지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수업을 듣던 평범한 얼굴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평범함 속에서 폭력이 가능해지는 사회 구조, 즉 여성의 이미지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소비하고 공유하도록 길들여진 집단 문화가 진짜 원인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건 세 가지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 피해자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고치는 일,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괜찮다’는 잘못된 친밀감의 논리를 뿌리부터 깨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친밀함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참고문헌
강희영 (2020). 디지털성범죄 피해의 복합성과 정책 과제. 이화젠더법학, 12(2), 45 - 94.
신성원 (2023).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연구. 한국치안행정논집, 20(4), 147 - 168.
조혜민 (2025). [기획논문] 판결문 내용 분석을 통해 본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 여성연구, 124(1), 5 - 28.
홍남희. (2018). 디지털 성폭력의 ‘불법화’ 과정에 대한 연구. 미디어, 젠더 & 문화, 33(2), 203-246.
출처 :: [한국심리학신문=박찬미 (pcm4329@naver.com)]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2248
2024년 여름,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명단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특히 가해자 중 상당수는 피해자와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같은 동네에 사는 '아는 사람'이었다. 언론은 이 소식을 연일 보도했지만, 정작 우리가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왜 가해자들은 굳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걸까? 또, 친밀함은 어떻게 폭력의 조건이 되는 걸까? 이 사설에서는 그 심리적 구조를 차근차근 짚어보려 한다.
'아는 사이'가 범죄의 조건이 되다
디지털 성범죄에서 지인에 의한 피해가 두드러진다는 점은 통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5년에 발표된 딥페이크 성범죄 판결문 분석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의 98.7%가 여성이고, 가해자들이 표적으로 삼은 사람 중 40.25%가 지인이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SNS 프로필 사진이나 카카오톡 이미지처럼 평소에 쉽게 볼 수 있는 사진을 모아 합성물을 만드는 데 썼다. 이렇게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합성물이 훨씬 실제처럼 보인다는 두 가지 범행 조건이 자연스럽게 갖춰진다.
심리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구조는 더 복잡해진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직접 아니까,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가 가능하다. 반대로 피해자 입장에서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피해 사실이 평소 생활반경까지 침투하게 된다. 만약 낯선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면 적어도 일상 공간만큼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인에 의한 피해는 학교, 직장, 동네 등 평범한 공간마저 불안의 영역으로 만든다. 피해자는 내일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 이미 자신을 그런 방식으로 소비했다는 사실을 안 채로, 일상을 버텨야 한다.
집단역학과 탈억제 — 온라인 공간이 가해를 부추기는 방식
개인이 혼자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집단 안에서 금세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실제로 여러 심리학 연구를 보면, 이런 조직적인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온라인 특성 때문에 성착취물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피해자를 향한 공감 능력도 점점 사라진다. 여기에 집단의 규범을 내면화하고 윤리의식이 부족한 상황이 겹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쉽게 정당화하고 책임감도 느끼지 않게 된다. 인터넷의 익명성 역시 이런 책임감을 흐리게 만들고, 가해자가 자신을 단순한 '대리인' 정도로 여기도록 만든다.
이런 집단 안에서는 지인의 이미지를 올리는 행동이 일종의 '기여'처럼 받아들여진다. 또 누군가의 동창이거나, 이웃이나 직장 동료의 사진을 합성하거나 공유하는 일이 집단 내부 결속을 다지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친근한 인물일수록 그 콘텐츠는 더 구체적이 되고, 집단 안에서는 이런 자료가 더 가치 있게 여겨진다. 결국, 친밀함이라는 요소가 착취의 수단으로 바뀌는 순간인 셈이다.
데이트 관계 — 신뢰가 통제의 언어로 바뀔 때
지인에게서 발생하는 또 다른 피해 유형은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데이트 관계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성폭력을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이런 피해는 개인적인 권력이 사회적인 권력으로 옮겨가며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으로 드러난다. 피해자들은 처음에 '강제적으로 허용하는' 단계를 겪게 된다. 연인이라는 이름 아래 쌓은 신뢰와 친밀함이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고, 가해자는 이 틈을 이용해 성적인 사진을 요구하거나 동의 없는 촬영을 시도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피해자가 초반에는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연인이라는 관계가 폭력의 실체를 감추기 때문이다. 뒤늦게 피해를 인식하고 맞서려고 해도, 가해자는 관계 자체를 무기로 삼아 협박하거나 상대를 고립시킨다. 신뢰는 어느새 통제의 도구가 되고, 친밀감은 오히려 피해자를 더 깊은 취약함 속으로 내몬다.
피해는 유포와 함께 무한히 확장된다
디지털 성범죄가 오프라인 성폭력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바로 피해가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딥페이크 성적 허위 영상물 심의가 요청된 건수는 9,006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제로 삭제 조치가 이뤄진 경우는 4.5%에 불과했다. 한 번 인터넷에 퍼진 합성물은 사실상 영구적으로 남게 되며, 피해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의 심리 지원 현황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피해가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기는 사회적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연구는 법과 정책의 개선 못지않게 피해자 중심의 심리 치료와 회복 프로그램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만약 피해자가 '아는 사람'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면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삭제를 요청할 공식적인 창구를 찾으려는 과정에서조차, 가해자가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이 피해자를 한층 더 외롭게 만든다.
우리 대학가가 응시해야 할 것
이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를 연구해보면, 예전에는 주로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던 범죄가 이제는 주변 지인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특히 가해자 중 상당수가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이라는 점도 확인됐다. 같은 학과, 같은 동아리, 같은 기숙사처럼 우리가 매일 드나드는 일상 공간이 언제든 범죄의 무대가 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해자들이 멀리 있는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어제까지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수업을 듣던 평범한 얼굴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평범함 속에서 폭력이 가능해지는 사회 구조, 즉 여성의 이미지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소비하고 공유하도록 길들여진 집단 문화가 진짜 원인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건 세 가지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 피해자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고치는 일,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괜찮다’는 잘못된 친밀감의 논리를 뿌리부터 깨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친밀함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참고문헌
강희영 (2020). 디지털성범죄 피해의 복합성과 정책 과제. 이화젠더법학, 12(2), 45 - 94.
신성원 (2023).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연구. 한국치안행정논집, 20(4), 147 - 168.
조혜민 (2025). [기획논문] 판결문 내용 분석을 통해 본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 여성연구, 124(1), 5 - 28.
홍남희. (2018). 디지털 성폭력의 ‘불법화’ 과정에 대한 연구. 미디어, 젠더 & 문화, 33(2), 203-246.
출처 :: [한국심리학신문=박찬미 (pcm4329@naver.com)]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