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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살인의 심리학(원제: On Killing)

한국심리상담센터
2022-04-12
조회수 29


살인의 심리학(원제: On Killing)

  • 저자: 데이브 그로스먼(Dave Grossman) / 역자: 이동훈
  • 출판사: 플래닛 (Planet)
  • 출판일: 2011년 6월 30일

책 소개:액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나쁜 악당무리들을 해치우면서 자신의 신념과 소중한 동료들을 지킨다. 전쟁영화 속 주인공들은 총소리와 비명이 난무하는 치열한 전장에서 살아남기위해 눈앞의 적을 죽인다. 이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은 때에 따라서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적을 죽인다. 그 과정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일단 적을 죽이겠다고 마음 먹은 주인공들의 다짐은 거의 흔들리지 않고 대부분의 적은 그렇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며 적이라고 해서 단호하게 죽일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동안의 전쟁과 전투에 관한 연구결과와 실제 참전 군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일 때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이를 통해 실제 전쟁의 모습이 어떠한지, 살인이라는 행위가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상황에 따라 한없이 약해질 수 있지만 반대로 상황만 받쳐주면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엿볼 수 있다.

저자 소개:데이브 그로스먼(Dave Grossman)은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 교수와 아칸소 주립대학 군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예비역 중령이다. 인간의 살해 행위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과정에 대해 주로 연구하며, 최초로 이러한 분야를 '살해학(killology)'이라고 이름붙였다. 살해학을 통해 그동안 외면받고 있었던 살인의 과정 속 발생하는 심리적 문제를 수면위로 드러냈으며,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폭력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폭력의 피해자들을 돕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전형적인 전투상황을 한번 떠올려 보자. 자세한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화약냄새가 진동하고, 흙먼지가 뿌옇게 날리며, 살점과 피가 땅에 낭자하고, 비명소리는 끊이지 않는 와중에 적과 아군이 뒤엉켜 서로를 죽이려 하는 상황이 생각날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전투 중 몇몇 전장의 상황은 위의 묘사와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매 전투가 위처럼 살아있는 지옥의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군인들은 전쟁의 상황속에서 전투를 할 때, 적을 향한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을 가지고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지 않았다.


마셜은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태평양 전구의 미 육군 역사가였고, 이후에는 유럽 전구 작전을 다루는 미국의 공간 전사가가 되었다. 그는 여러 역사학자들과 팀을 이루어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전투에 참여한 400개가 넘는 보병중대에서 선발한 수천 명의 군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개별 면접과 집단 면접에 기초해 있었다. (중략) 결과는 일관되게 똑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소총수들 가운데 15%에서 20%만이 적군에게 총을 쐈을 거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총을 쏘지 않은 병사들은 도망치거나 숨은 것이 아니었지만 (많은 경우 이들은 동료를 구출하고, 탄약을 확보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다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 했다), 이들은 일본군이 반복해서 만세 돌격을 감행할 때조차 적군을 향해 자신들이 지닌 무기를 발사하려 하지 않았다. - 37쪽

분명한 점은 군인들 대다수가 표적 대신 살아 숨 쉬는 적과 마주하게 되면 대치 상태로 전환해 적의 머리 위로 총을 쏜다는 것이다. - 47쪽

그동안 우리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했던 전투의 상황은 지휘관이 "돌격!"이라고 외치면 병사들은 "와아!"라고 소리지르며 한 치의 두려움없이 적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투를 재현한 영화들을 보면 지휘관으로부터 공격명령을 하달받은 병사들은 항상 용감히 적과 맞서 싸우고 죽는다. 하지만 이는 절대로 실제 전투 상황과 같지 않다. 실제상황에서 군인들은 공격명령을 하달받고 적에게 가까이 접근해 총구를 겨누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죽지 않는다는 것과 누군가를 실제로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배우들과 달리, 실제 군인들은 자신들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셜은 "평균적인 건강한 개인은 (중략)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면 자발적으로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을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것에 대해 부지불식간에 내면적인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군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된다"고 마셜은 말한다. - 73쪽

수많은 전투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다른 연구결과들 또한 실제 전투에서 군인이 적과 마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적극적으로 적을 죽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사람이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을 마주친 보통의 군인들은 일부러 적을 빗 맞히는 소극적인 방식부터 전투에서 도망치는 적극적인 방식까지 어떻게든 살인을 해야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거나 벗어날 수 없었던 군인들은 결국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물론 살해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난 군인들도 그러한 선택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투를 벌이는 군인은 이 비극적인 진퇴양난의 덫에 사로잡혀 있다. 살해에 대한 거부감을 밀쳐 내고 근접 전투에서 적군을 죽이게 되면 그는 영원히 죄책감이라는 짐을 짊어져야 하며, 죽이지 않기로 결정하더라도 죽은 동료에 대한 죄책감과 책무와 국가, 대의에 대한 수치심이 그 앞에 놓여 있다. 죽여도 저주받고 죽이지 않아도 저주받는다. - 148쪽

죽음과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전투 중에 정신적 사상자가 발생하는 유일한 원인이 아니며, 심지어는 주된 원인도 아니다. (중략)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끔찍하다 (중략) 죽음과 부상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적대적인 대치 상황에 대한 거부감 역시 전장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중략) 피로와 증오, 공포가 뒤섞인 두려움,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을 느끼면서도 살해를 해야 한다는 도저히 타협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임무를 부여받은 가운데, 군인은 죄책감과 공포의 진창 속으로 깊이 빠져들다가 결국 정신 이상자가 되고 만다 - 104쪽

저자는 전투 살해의 기본 반응 단계들이 '살해에 대한 염려', '실제 살해', '도취', '자책', '합리화와 수용'의 순서로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각 단계는 위의 순서대로 일어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특정 단계를 건너뛰거나 여러 단계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름으로부터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듯이 '살해에 대한 염려', '실제 살해의 경험', '살해 당시나 후에 느껴지는 쾌감', '살해 행위로 인한 죄책감', '자신의 살해 행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중요한 점은 살인을 저지른 한 군인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마지막 단계인 '합리화와 수용'이 실패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참전 용사들은 이 단계를 넘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주 인용되는 스왱크와 머천드의 제2차 세계대전 연구에 따르면, 60일 동안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투를 치르게 될 경우 생존한 군인의 98%가 이러저러한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90쪽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인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살인을 하지 않고, 또한 살인 행위를 저질렀다면 이로 인해 막대한 정신적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다면 전쟁이 그토록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략)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거리다. - 177쪽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공격이 더 쉬워진다는 사실은 별로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피해자에 공감하는 능력은 물리적 거리에 직접적으로 반비례하며, 거리가 가까울수록 살해하기 어렵고 트라우마가 크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 165쪽

오늘날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이, 사상자의 대부분을 살상한 것은 보병이 아니라 포병이었다.
- 70쪽

간단히 말해, 물리적 거리의 본질은 살인자가 희생자의 얼굴을 얼마나 자세히 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중략) 살해할 때, 눈을 보지 않아도 될 경우, 피해자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일은 훨씬 더 쉬워진다. "새우처럼" 툭 튀어나온 눈과 입으로 토해 내는 피는 보이지 않는다. (중략) 근거리에서 살인을 하게 될 때 대다수 살인자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 즉 "고통과 증오로 일그러진 끔찍한 얼굴"에 관한 기억은 단지 피해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결코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 206쪽

통계를 보면, 폭격기의 조종사나 기관총 사수와 같이 장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군인들은 백병전(도검 등 근접 전투용 무기를 이용한 전투)처럼 근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군인들과 비교했을 때 정신적 사상자의 발생 비율이 현저히 낮다. 인터뷰 자료를 보면, 군인들 모두는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명백한 살인 행위임을 알고 있지만 멀리서 적을 죽이는 군인들은 가까이서 적을 죽이는 군인들처럼 살인에 대해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멀리서 적을 죽이는 군인들은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943년 7월 28일, 함부르크에 폭격이 이루어졌던 그 때, 당시 그곳에 살고있던 열다섯 살의 소년은 불타오르는 도시 속에서 가족과 집을 잃고 절망에 빠졌지만, 2만 피트 위에서 도시를 폭격했던 한 영국 공군은 불타오르는 함부르크를 보면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만족감을 느끼고 새빨갛게 변한 도시의 장관에 매료될 수 있었다. 이 폭격수와 같은 장거리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미칠 영향을 상상할 수 없었고 굳이 상상하려고 하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심리적 거리도 같이 멀어진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 해전을 벌이는 동안 정신적 사상자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중략) 해답은 이들 대부분이 누군가를 직접 죽이지 않아도 되며 그 누구도 특정 인물을 개인적으로 대면한 상태에서 죽이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중략) 가까이에서 개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대신에 현대 해군은 배와 비행기를 죽인다. 물론 배와 비행기에는 사람이 타고 있지만, 심리적, 계적 거리는 현대의 수병들을 보호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함선들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적 함선을 향해 발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들이 겨냥해 발포한 비행기는 그저 하늘에 있는 얼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바다의 전사들은 이성적으로는 자신들이 자기와 다를 바 없는 같은 인간을 죽이고 있고 누군가가 자신들을 죽이길 바란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이를 부인할 수 있었다. - 111쪽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양상이 점점 첨예해지고 있다.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은 물론이고 정치적 입장의 차이나 가치관의 차이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간의 대립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각각의 입장들은 나름의 이유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주장은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틀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생각해 보니, 갈등의 진행과정이 저 멀리 있는 상대편을 향해 쉴새 없이 포격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서로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는 것을 근거리 전투로, 인터넷과 문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를 장거리 전투로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모습은 장거리 전투에 훨씬 가깝다. 앞서 말했듯이 장거리 전투는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물리적 거리가 멀고 따라서 심리적 거리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인간성을 부인하기 쉽다. 상대 진영을 향해 가차없이 비난하고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더 이상 논리의 허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닌 상대방과의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면서 조금씩 심리적 거리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최근 대중가요 가사가 뭐라고 지껄이든, 당신도 멀리서는 친구로 보이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볼 때, 나는 당신의 인간성을 부인할 수 있다. 멀리서, 나는 당신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없다. -170쪽

글. 김홍균

필자는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리적 편향과 이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계적 사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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