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내가 누구인가를 나타내는 데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해 하는 질문들 중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가 포함된다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중요한 정보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로발달학자인 Donald Super는 우리가 하는 일이 자기 개념의 사회적 표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정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할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할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지 등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또한 한 가지 일을 선택한다면 결국 다른 관심있는 일들은 포기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결정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진로선택과정에서 불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에 더하여 사회적 소수자들은 사회적인 상황으로 인한 제약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일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진 않습니다. 특히 전문직과 같이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여겨지는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에 더하여 재정적 자원과 같은 외적인 지원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나 이주민, 성소수자와 같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경험하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일을 선택할 때 차별을 경험하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는 자유롭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의 심리학 관점(Psychology of Working Framework)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소외화와 경제적 제약이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며, 따라서 적어도 ‘‘괜찮은 일(decent work)’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간주합니다.
일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괜찮은 일이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일로, 물리적, 심리적으로 안전한 직무환경, 적절한 보상 수준, 건강보험을 포함하는 후생복지제도, 자유시간과 휴식을 보장하는 근무시간, 가족 및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기업의 가치를 포함합니다. 개인이 속한 사회나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따라 괜찮은 일의 조건이 다소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앞서 언급된 다섯 가지 조건은 개인이 일을 통해 생존, 유능감, 자율성, 관계성, 사회적 연결감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데 중요한 조건입니다.
괜찮은 일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 이외에도 또다른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바로 자신이 하는 일을 의미 있게 느끼기 위해서는 괜찮은 일이 전제 조건이 된다는 점입니다. ‘의미 있는 일(meaningful work)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정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자신의 일을 중요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이 가장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에 더하여 일을 통해 성장하고, 삶의 지향점을 인식하게 되며, 나아가 다른 사람과 사회에 기여한다는 경험도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을 통해서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지향점과 사회적 가치와 같은 의미까지 경험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상적인 진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괜찮은 일에서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일로 경험하고 있을까요?
최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학생의 직업가치 변화: 의사와 법률전문가를 중심으로'에서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2018년과 2022년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보고한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를 비교하고 있는데요, 희망직업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서 선택했다는 비율은 줄어든 반면(다행히? 여전히 가장 이 응답을 한 학생들의 비율이 가장 높기는 합니다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답변의 비율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특히 2022년의 초등학생들 중 의사를 희망 직업으로 보고한 경우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학생들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직업 선택에서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는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누군가는 새로운 세대들이 물질주의적 가치를 중시하고 도전보다는 안정지향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일의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보상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괜찮은 일을 찾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습니다.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증가가 두드러지는 현대 사회에는 불안정한 일이 증가하고 양질의 괜찮은 일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괜찮은 일을 획득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보여집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비록 괜찮은 일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그 일을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진로 이론과 경험적 연구들에 근거하면, 괜찮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은 존재하기 어려우며,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 매우 예외적인 상황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괜찮은 일로 경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대가 가진 진로 가치를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에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보상이나 안정성은 없더라도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자기 착취를 미화하는 억압적 메시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괜찮은 일을 원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요?
글: 양은주,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교수, 한국상담심리학회 편집위원장, 상담심리사1급(제485호)
출처 : 한국강사신문(https://www.lecturernews.com)
일은 내가 누구인가를 나타내는 데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해 하는 질문들 중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가 포함된다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중요한 정보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로발달학자인 Donald Super는 우리가 하는 일이 자기 개념의 사회적 표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정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할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할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지 등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또한 한 가지 일을 선택한다면 결국 다른 관심있는 일들은 포기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결정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진로선택과정에서 불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에 더하여 사회적 소수자들은 사회적인 상황으로 인한 제약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일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진 않습니다. 특히 전문직과 같이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여겨지는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에 더하여 재정적 자원과 같은 외적인 지원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나 이주민, 성소수자와 같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경험하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일을 선택할 때 차별을 경험하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는 자유롭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의 심리학 관점(Psychology of Working Framework)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소외화와 경제적 제약이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며, 따라서 적어도 ‘‘괜찮은 일(decent work)’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간주합니다.
일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괜찮은 일이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일로, 물리적, 심리적으로 안전한 직무환경, 적절한 보상 수준, 건강보험을 포함하는 후생복지제도, 자유시간과 휴식을 보장하는 근무시간, 가족 및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기업의 가치를 포함합니다. 개인이 속한 사회나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따라 괜찮은 일의 조건이 다소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앞서 언급된 다섯 가지 조건은 개인이 일을 통해 생존, 유능감, 자율성, 관계성, 사회적 연결감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는데 중요한 조건입니다.
괜찮은 일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 이외에도 또다른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바로 자신이 하는 일을 의미 있게 느끼기 위해서는 괜찮은 일이 전제 조건이 된다는 점입니다. ‘의미 있는 일(meaningful work)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정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자신의 일을 중요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이 가장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에 더하여 일을 통해 성장하고, 삶의 지향점을 인식하게 되며, 나아가 다른 사람과 사회에 기여한다는 경험도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일을 통해서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지향점과 사회적 가치와 같은 의미까지 경험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상적인 진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괜찮은 일에서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일로 경험하고 있을까요?
최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학생의 직업가치 변화: 의사와 법률전문가를 중심으로'에서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2018년과 2022년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보고한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를 비교하고 있는데요, 희망직업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서 선택했다는 비율은 줄어든 반면(다행히? 여전히 가장 이 응답을 한 학생들의 비율이 가장 높기는 합니다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답변의 비율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특히 2022년의 초등학생들 중 의사를 희망 직업으로 보고한 경우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학생들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직업 선택에서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는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누군가는 새로운 세대들이 물질주의적 가치를 중시하고 도전보다는 안정지향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일의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보상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괜찮은 일을 찾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습니다.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증가가 두드러지는 현대 사회에는 불안정한 일이 증가하고 양질의 괜찮은 일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괜찮은 일을 획득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보여집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비록 괜찮은 일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그 일을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진로 이론과 경험적 연구들에 근거하면, 괜찮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은 존재하기 어려우며,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 매우 예외적인 상황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괜찮은 일로 경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대가 가진 진로 가치를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에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보상이나 안정성은 없더라도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자기 착취를 미화하는 억압적 메시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괜찮은 일을 원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요?
글: 양은주,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교수, 한국상담심리학회 편집위원장, 상담심리사1급(제485호)
출처 : 한국강사신문(https://www.lecturernews.com)